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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1 오전 11:19:15 입력 뉴스 > 칼럼/사설

[박영일 칼럼] 농월정 복원은 선비문화 계승 그 이상의 의미



 

덕유산, 월봉산, 거망산,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발원한 계류가 구비돌아 기암괴석과 함께 절경을 빚어내 명승을 이루고, 옛사람들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정자를 지어놓고 소요하던 곳이 지금도 각광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체로 산수가 어우러진 명승으로 전국에 알려진 곳인 화림동 계곡의 초입은 농월정이 있는 너럭바위 월연암에서 차일암, 군자정, 동호정, 거연정을 거쳐 남덕유산 영각사로 이어지는 계곡을 말한다.

 

그 중 농월정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관찰사와 예조판서를 역임하며 선조, 광해군, 인조 등 3명의 임금을 보필한 지족당 박명부(1571~1639)16379월에 은퇴하여 띠집으로 지어 은거하며 자신을 수양 하던 곳이다. 약관(20세 전)에 중광병과에 급제한바, 월사 이정구가 시로서 경인오방최위성 사십인중최소년이라 칭찬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고향 어른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학봉 김성일, 망우당 곽제우의 의진에 왕래하면서 호국활동을 벌였으며 가난한 백성을 구휼하기도 했고, 청렴결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인조가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 왕을 호종했고,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고 강화조약을 체결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월연암 위에 정자를 짓고 바위에 농월정이라 새긴 것이다. 후세에 와서 농월정은 우리나라 제일의 풍류거리인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 동호정 등과 함께 선비문화를 대변하는 중요 문화유적으로 사랑받아 왔다.

 

농월정은 정자문화의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 싼 자연경관과 수천명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 그위에 새겨진 지족당장구지소와 10보 옆에 농월정을 비롯한 시인 묵객들의 각서가 이곳이 선비들의 소요처였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이 농월정의 창건 내력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하늘의 달, 술잔에 비친 달, 물위에 비친 달을 희롱하면서 마냥 풍류를 즐긴다는 뜻만은 아니다.

 

숨은 속 뜻은 전국시대 제나라 노중련이 동해에 몸을 던져 죽을지라도 진나라 백성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하므로 당시에 그는 의를 지키는 천하의 위인으로 칭했다. 달이 바다에서 떠올라 어둠을 밝히듯이 박명부는 나라를 잃은 심사를 노중련의 마음과 같이 한 것이다.

 

지족당 박명부가 자기가 은거하는 곳의 이름을 월연(月淵)이라 한 것도 그 달이 뜨는 뜻을 말한다. 즉 명나라를 높이는 절의(節義)를 지키고, 같이 척화(斥和)를 주장한 동계 정온과의 대의를 지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장수현감을 지낸 유휴조(1792~1876)가 계유년(1873)에 지은 농월정 중건기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농월정 편액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썼다는 기록도 있다.

 

창건이후 340년이 넘는 세월속에서 퇴락과 전복으로 백여년간 방치되기도 하다가 뜻있는 후손과 종중의 협조로 일곱 번 중건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불행하게도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완전 소실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타까움을 샀다.

 

2005년 국비 2억원을 보조받아 실시설계까지 마쳤으나 문중의 협의를 얻지 못해 반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를 10, 지난 20147월 농월정 복원을 위한 협의에서 문중과 종손이 협조해 20144월 실시 설계를 마치고, 5월부터 20159월 복원공사를 추진했다.

 

복원 건축물은 목조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서 정면 3, 측면 2, 바닥면적34.56평방미터, 내부어칸 1, 누하주(도량주12), 높이가 7.5~8.2미터다. 소요액은 도비와 군비를 합쳐 10억원이다. 군은 사진과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원형에 충실하면서 전통을 간직한 옛 멋을 잘 살렸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정자에 걸려있던 중건, 중수기와 많은 시편들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정자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중건기와 시편들인데....... 이들도 함께 복원 했더라면 좋았을텐대 아쉽다. 조속히 제작되기를 기대한다.

 

수백여년의 긴 세월 보존해 온 박씨문중에게 고마움과 1980년 단청보수비를 지원한 조규섭 전 함양군수 그리고 올해 복원을 완공한 임창호 함양군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이로써 우리조상들인 조선의 선비들이 자연을 어떻게 즐겼으며 남긴 발자취가 어떠하였는지를 반추해 볼 수도 있으며, 우리가 언뜻 스쳐지나가던 역사속에서 선비문화의 정신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박영일

현) 함양인터넷뉴스 회장
현) 함양문화원 부원장

함양군청 기획감사실장 역임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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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월정에 대하여 몰랐든 내용들을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201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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