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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오전 9:30:02 입력 뉴스 > 칼럼/사설

[박영일 칼럼] 비석의 의미



▲  2016년 3월 29일 공사현장서 발견된 함양군수 박사한 청백선정비

 

지난 2016329일 함양의 역사속에 한 인물이 세상에 나타났다. 당시 함양읍 전지역에 걸쳐 진행되던 하수관거정비사업 중 함양읍 운림리 49-1번지 도로에서 초등학생 키만한 비석(가로 51cm, 세로 111cm, 두께 15cm)과 거북이상을 하고 있는 받침돌이 발견된 것이다.

 

비석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88년전인 조선 영조 때 함양군수를 지낸 박사한의 선정비였다. 박사한의 본관은 고령으로 1677년 숙종 3년에 태어났다. 조부는 현종 때 대사헌을 지낸 박장원이고, 부친은 청백리로 뽑힌바 있는 김제군수를 지낸 박선이다. 또한 조카는 지방관들은 떨게하고 백성들은 박수를 쳤던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이다.

 

이렇게 보면 박사한의 선정비가 발견된 것이 여타 역사속 인물들의 선정비가 발견된 것과 무엇 다를 것이 없지만, 그가 함양군수로 재임할 당시 발생한 사건이 과거의 한 장면을 돌이켜볼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박사한의 선정비가 세워진 1728년 영조 4년에는 조선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반란이 일어난 시기이다. 무신년에 일어났다해서 무신란이라고도 불리는 이인좌의 난이 그것이다. 소론 강경파와 일부 남인들이 함께 경종 독살설 및 영조의 왕위 계승 부당성 시비, 이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대립과 갈등이 누적된 상황에서 밀풍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반기를 든 사건이다. 충청도 이남 곳곳에서 시작된 반란 중 영남에서는 안의 출신인 정희량이 세력을 규합해 안음, 함양을 비롯해 거창, 합천까지 4개 군현을 점령했다.

 

당시 함양군수였던 박사한은 정희량의 반란군이 함양으로 진격하자 맞서싸울 생각이었으나 성내 일부 관리와 백성들이 반란군과 내응하는 바람에 성을 버리고 운봉현감에게 몸을 의탁했다. 박사한은 운봉현감과 함께 이인좌의 반란군 본대와 합류할 예정이던 정희량의 반란군을 팔령치에서 막았다.

 

난이 평정된 후, 박사한은 함양으로 돌아 와 적을 따른 관리위 적장 심수경, 안음의 가짜현감 신수현과 그의 아들 신윤증 등을 체포하여 효시하였고, 적당 이만채 이익훈 정규서 등을 엄중히 가두었다고 병조판서 겸 4도 순무사 오명항의 장계에 올라가 있다.

 

박사한은 난이 진압되고 1년 후 조정에서 논공행상을 할 때 반란군이 함양성으로 난입했을 때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는 상소가 올라왔으나 영조가 윤허하지 않아 무사하였다.

 

이인좌의 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희량으로 인해 안음의 시련이 시작됐다. 안음현은 혁파돼 함양과 거창으로 반분 흡수되었다. 함양은 부로 승격되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던 함양군이 역향의 고장으로 중앙정부로부터 박해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가 있더라도 배제되는가 하면, 개별적으로 역적의 고장 사람이라하여 천시하고 억압당했던 것이다. 관직에서 성공한 사람도 없고 미관말직이라도 요직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이며, 관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행위가 심했다. 이러한 핍박이 9년간 계속됐다.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비석한 점 덕분에 300여년 가까이 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고, 그 비석의 인물과 연관된 사건이 조선 반도를 뒤흔든 사건이었던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다. 함양군수 박사한의 선정비는 현재 상림역사인물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함양군사

-한국고전종합DB

-청장관전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박영일

현) 함양인터넷뉴스 회장

전) 함양문화원 부원장

함양군청 기획감사실장 역임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의견보기

박문수는 실제로 암행어사로 나가지 않은걸로 알고 있고요. 경상감사를 하면서 반역으로 없어진 안음현을 복구해 달라고 상소를 올린적이 있는데 받아들이지 않은걸로 알고 있고요. 어느 지역인지 백성들을 순무하러 나간적이 있는걸로 압니다.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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