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미용사회 함양군지부 봄 야유회
금연 글짓기 공모전
2019년 1기 아쿠아로빅 수강생 모집
최종편집
2019-05-20 오전 10:10:00
기사
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회사소개 | 후원하기 | 사업영역 | 시민제보 | 취재요청 | 명예기자신청 | 광고문의 | 콘텐츠
뉴스
함양뉴스
읍면동뉴스
정치의원
사회단체
체육축제
교육문화
기업경제
농민뉴스
미담사례
고시 및 공고
경남뉴스
전국뉴스
향우뉴스
오피니언
칼럼/사설
여론광장
독자코너
자유게시판
인사이드
부동산
인물동정
맛집/멋집
관광여행
기자탐방
2019-05-03 오전 9:21:34 입력 뉴스 > 함양뉴스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기획연재
"일제가 안중근에게 문태수를 아냐고 물었다."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심문하던 일제 검찰관은 안중근에게 물었다. ‘문태수()를 아느냐?’

 

1909122일이었다.

여순 감옥에서 일제 검찰관은 안중근을 심문하는 도중에 홍범도, 최익현 등 당대 항일운동가들과의 관계를 묻다가 낯선 이름 “‘문태수를 아느냐고 묻는다.(일제통감부 문서7)

 

심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약 40명에 달하고 그들 대부분 항일저항운동을 이끌던 명망가들임을 미루어 일제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빌미로 독립운동세력의 완전 궤멸을 획책한 듯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문태서로 알려진 의병대장 문태수의 의병전쟁에서 가지는 위상이다. 지금까지 문태수는 고향인 함양에서 조차 신출귀몰한 덕유산 호랑이였다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의 방식으로 알려져 왔을 뿐, 사료가 불충분하여 그 업적이 객관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역사가 이긴 자들의 입장에서 쓰여 진다는 사실, 더구나 임시정부 수립 100, 해방 70년이 흘렀어도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현재 상황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후손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이에 간략하게나마 문태서 장군의 업적을 짚어보면서, 함양인들이 앞으로 할 일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갖는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를 죽인 것은 19091026일이었다. 일제통감부 문서를 보면 일제헌병이 모든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조선의 의병활동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민비 타살 이후 들불처럼 일었던 의병을 모두 토벌하였다고 공언하던 일제에게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안중근의 직책은 충격이었고 그로 인하여 의병의 존재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더구나 하얼빈 거사가 이루어진 바로 삼일 후 막강한 의병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전국 의병사19091029(하얼빈 거사 삼일 후) 충청남도 이원역()을 문태수()가 이끄는 의병이 습격하여 역()사를 소각하고 일본 경찰 3명을 포로로 끌고 간 사건이 발생한다. 일제가 만주와 중국의 무장독립운동세력은 거의 붕괴 직전이고 국내의 의병은 모두 토벌되었다고 믿는 그 시점이다. 중국에서 이토가 총에 맞아 죽고, 국내에서는 사라졌다는 의병이 대륙침략을 위한 기간시설인 철도를 일시 마비시켰으니, 일제 헌병의 당혹감과 불안감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문태수() 장군은 이원역 습격사건 이후 서울로 잠입한다.(의병사같은 책의 충청북도경찰부장 전보안 참조). 이는 해외 독립세력과 국내 의병세력이 서울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판단을 일제로 하여금 하게 한다. 하얼빈 의거와 이원역 습격사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점 역시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안중근 의사의 신문과정에 의외의 인물인 문태수 장군이 등장하고 둘의 관계를 추궁 당하게 된다.

 

문태수 장군의 등장을 의외라고 말했지만 이는 다분히 현재의 시각이다. 역사적 기록이 미흡하여 단순히 호남의병대장, 덕유산 호랑이라 칭하지만 문태수 장군의 업적은 남은 기록만으로도 그가 당대 가장 강력한 의병부대장이었음을 중명한다.

 

또한 그의 활동 반경이 덕유산을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과 영남 일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전국단위였기에 일제에게는 가장 위험한 적대적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태수 장군의 대표적인 전과로는 흔히 고창곡 전투를 일컽는다. 1908년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구식장총이 유일한 무장수단이었던 의병이 포위공격하여 일본군 43명을 사살하고 총기 50정을 노획한 사건이었으니,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는 전투였다.(독립운동자 공훈록에서 참조)

 

고창곡 전투 이외에도 문태수 장군의 업적을 찾아가면 갈수록 부끄러움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왜냐하면 1909년 당시 일제에게 가장 두려운 의병대장이었던 그를, 현대를 사는 우리들 스스로가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장군의 위치를 의외로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함양의 후손들인 우리들은 선조들의 업적을 발굴하여 파악하고 널리 알리는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친일청산과 21세기 새로운 독립운동을 향한 첫발을 내딛자는 마음들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몇몇의 힘으로만 이루기에는 벅차다. 함양인들에게 함께하자는 부탁을 드린다. 이런 운동은 학술발표회나 공청회 그리고 문태수 장군을 아는 이들의 사료 제공과 증언 등이 필요하지만 현단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튜브에 문태수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는 일이다.

 

함양군민들께서는 유투브에서 장빵 tv’를 검색하여 정기구독하여 시청하시기를 바란다. 또한 문태수 장군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으시면, 혹은 우리가 범하는 오류가 있다면, ‘장빵TV’에서 좋아요를 누르기 전에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옛날 손바닥을 땀으로 적시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른 소설책을 읽을 때면 어김없이 그들을 지켜주는 주막 주인이 나오고 군자금을 모아주는 서당 선생님이 나온다. 감동적이었다. 오늘날의 감동은 유투브에서 나온다고 한다. ‘장빵 TV’ 시청으로 새로운 감동의 물결이 일어나 우리 고향 함양의 훌륭한 인물들이 새롭게 역사에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이기를 다시 한 번 바란다.

 

-글: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의견보기
이런 추정
10월 26일, 혹시 안중근의사가 하얼삔역에서 이토 저격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좀 한가한 역사, 옥천의 이원역을 장악하고, 이토일행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공격할 계획이지 않았을까? 거사가 성공한 소식을 듣고, 이미 실행계획이 섯던 만큼 훈련겸 이원역 공격. 2019-05-10
덕유산호랑이
장수읍 공략 일본 7개읍 헌병대연합부대 격파 고창곡 전투 경부선이원역 소각 ㆍ 자랑스런 항일의병사를 기대해주세요 2019-05-03
배성훈
문태서 의병대장님의 업적은 경남의 자랑입니다. 1년이상 연구하시고 책자를 발간하신 김성진 전문화원장님에게 문의 하시면 많은 내용을 아실 것입니다. 2019-05-03
  의견쓰기
작 성 자 비밀번호
스팸방지  
※ 빨간 상자 안에 있는 문자(영문 대소문자 구분)를 입력하세요!
의견쓰기
내용은 200자 이내로 적어야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글은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경남 대표 미녀 8명, 함..
김기범 민주당 거함산합..
함양군의회 지곡면·안..
함양 어르신들 찾은 ‘..
제14회 함양군이장단협..
‘2019 전국어린이 태..
함양군-경남과기대 MOU..
함양군-경남도립거창대..
‘산삼항노화 산지유통..
함양군 기초질서 지키기..


방문자수
  전체 : 149,964,596
  어제 : 54,216
  오늘 : 21,309
함양인터넷뉴스 |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함양초등길 57| 제보광고문의 055)964-5005 | 팩스 055)964-5004
회사소개 | 후원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인터넷신문 등록일 2009.9.14 | 발행연월일: 2009.9.14ㅣ등록번호 경남 아00084호 | 발행인:박정주 | 편집인:박영일ㅣ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주
Copyright by hyinews.com All rights reserved. E-mail: hy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