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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오전 10:54:33 입력 뉴스 > 함양뉴스

의병대장 문태서 공식문건 첫 등장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기획연재 ③



▲ 문태서 장군 의병부대의 본거지였던 덕유산 일대

 

일본제국주의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치안권을 장악했다.

 

이를 통해 조선인 헌벙보조원을 모집하여 일제의 끄나풀(정보원)로 삼았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전쟁에 나선 사람들을 폭도로 간주했다.

 

일제는 조선인 헌병보조원의 정보수집을 바탕으로 의병들의 활동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이 자료가 <폭도 토벌에 관한 편책>이다. 이 자료에 의병대장 문태서 장군의 활동내용이 일본의 입장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과감하게 제거하였기에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에서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앞으로 이 기록에 나타난 내용을 날짜순으로 연재할 예정이며,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연구팀이 의병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내용을 덧붙일 예정이다.

 

다음은 19081월 작성된 일본 경찰의 공식문건 내용이며, <폭도에 관한 편책> 11권에 기록된 내용이다.

 

발신자 : 금산경찰분서장 경부 고마츠 나오노신

수신자 : 경무국장(경찰총장) 마쓰이 무

1. 320일 오후 2시경에 금산경찰분서 관할내 무주순사주재소 순사 후지카와 쇼이치는 한국인 순사 김태호, 김태식 그리고 영동수비대에서 출장나온 요시조 하사와 그 부하 8명은 안성지방에 폭도들의 활동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갔다가 지역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정보를 입수하였다.

“320일 오후(?) 8시경 안성 이안면(현 안성면 소재지) 시장에 의병 사십명의 일행과 30명의 일행이 와서 민가에서 술과 식사를 달라고 해서 먹고 마신 후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일안면(현 무주 구천동) 방면으로 향하였다. 그 폭도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문태수와 김동신 2명이었다. 화승총 오십여정과 서양 신식총 십정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지역민들에게 일본인들의 활동상황을 물었다

 

이러한 정보를 파악하고 정찰대 일행은 321일 이를 추적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였으며, 폭도들은 이안면 시장에서 식사 후 한두시간정도 휴식을 취하고 일안면 삼공리에서 덕유산을 넘어 경상남도 안의 지방으로 향해 도주한 흔적이 있으나 민가에 피해를 끼친 흔적은 거의 없다.

 

2. 안성지방의 자위단은 규약을 실행하여 마을 변두리에 파수처를 설치하고 때때로 순찰하고 있는데 이번 정찰대의 일행이 그 지역에 도착하자 폭도들에 관한 사항을 빠짐없이 보고하였다.

 

3. 안성 일안면 구천동 산사와 이안면 사탄리 산사(두 절은 인가에서 2(800m)이상 떨어진 깊은 산골에 있다.)에 들러 폭도들이 다녀간 상황을 물었으나 전에는 가끔씩 이곳에 나타나 머무러고 간 적이 있으나 최근에는 나타난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다음은 위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에서 재해석한 내용이다.

 

1. 전북 무주군 안성면 장날 2개의 의병부대가 나타남.

 

“320일 오후(?) 8시경 안성 이안면(안성면 소재지) 시장에 의병 사십명의 일행과 30명의 일행이 와서 민가에서 술과 식사를 달라고 해서 먹고 마신 후 ....”

 

당시 금산군에 속해 있던 안성지역(금산군에 속해 있던 두 지역 안성과 횡천은 특정 행정지명이 아닌 민간명칭임) 내 이안면은 정기적인 장이 서는 곳이었다. 장날은 지역 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그들 중에는 민간인들을 가장한 의병들도 모여들었을 것이다.

 

320일 안성지역 이안면 장날 오후 2시 장이 성시를 이룰 무렵 두 무리의 의병부대가 연이어 장터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한 40명의 의병부대는 장터에서 술과 국밥을 청해서 먹고 있었을 것이고, 이어서 도착한 30명의 의병부대는 다른 장소에서 역시 술과 국밥을 청해서 먹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터에서, 40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술과 밥을 청해서 먹었다면 강탈이었거나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먹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강탈해서 먹었을까? 댓가를 지불하고 먹었을까? 논의는 마지막 부분에서 하기로 하자.

 

일본 헌병이 320일 오후 2시에 출병하였다고 기록한 후 동일 오후 8시에 두 개의 의병부대가 이안면 장터에 와서 술과 밥을 청해서 먹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우리 모두의 상상에 맡겨야겠다.

 

“ ..... 일안면(현 구천동) 방면으로 향하였다. 그 폭도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문태수와 김동신 2명이었다.”

 

시간을 두고 장터에 도착했는지, 동시에 도착했는지는 기록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일본은 그 의병부대의 지휘자를 문태서, 김동신으로 특정하여 기록하고 있다.

 

김동신은 충남 회덕군 출신으로 1906326일 홍주(충남 홍성의 옛 지명)에서 기병한 민종식의 부하로 들어가 그 선봉장이 되었다. 1907910일 김동신은 8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의 우편취급소와 경무고문분파소(警務顧問分派所)를 습격하여 이곳을 점령한 후 이곳 관물을 노획하였다. 김동신의 순창 전투는 이해 915일 고광순의 동복(同福) 순사주재소 습격과 더불어 군대해산 후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에 있어서의 의병봉기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미 1907년부터 전라도 지역의 의병장으로 맹활약하고 있던 김동신과 함께 행동하고 있는 의병장 문태서가 처음으로 일본 공식문서에 등장하였다. 기록을 분석해보면 문태서의병부대가 40여명, 김동신의병부대가 30여명이다. 일본경찰은 문태서를 먼저 언급하고 김동신을 뒤에 언급한 것으로 보아 문태서가 더 중요한 의병지도자라고 판단한 것 같다.

 

화승총 오십여정과 서양신식총 십정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지역민들에게 일본인들의 활동상황을 물었다

 

안성장에 나타난 의병들은 약 70여명 정도이다. 화승총 50여정과 서양신식총 10정 모두 60정이면 의병들 대부분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화승총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총격전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무장을 한 부대였다.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일본인들의 활동상황을 수집했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행정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파악하고 정찰대 일행은 321일 이를 추적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였으며, 폭도들은 이안면 시장에서 식사후 한두시간정도 휴식을 취하고 일안면 삼공리에서 덕유산을 넘어 경상남도 안의지방으로 향해 도주한 흔적이 있으나 민가에 피해를 끼친 흔적은 거의 없다.”

 

안성장에서 술과 밥을 청하여 먹고 마신 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갔다는 기록과 민가에 피해를 끼친 흔적은 거의 없다는 기록은 서로 맞지 않다. 19094월 안성지역 두 곳에 의병대장 문태서 장군 송덕비가 건립된다. 일본경찰의 기록에는 문태서 장군의 활동은 지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음이 자주 나타난다. 안성장에서 술과 밥을 청해서 먹고 마신 후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해당 지역이 문태서장군의 영향력하에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덕유산을 넘어 경상남도 안의지방으로 도주하였다고 하였으나, 활동근거지인 월성계곡으로 이동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2. 안성지방에서는 일본경찰을 지원하는 자위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안성지방의 자위단은 규약을 실행하여 마을 변두리에 파수처를 설치하고 때때로 순찰하고 있는데 이번 정찰대의 일행이 그 지역에 도착하자 폭도들에 관한 사항을 빠짐없이 보고하였다.”

 

당시에는 금산군에 속해 있던 무주군 안성지역은 의병들이 장악한 지역이었다. 비록 일본경찰조직이 행정적으로 활동하고 있기는 했지만 금산읍에 주둔하고 있는 경찰분소와 무주지역에 있는 무주순사주재소 인력 및 헌병보조원 등으로는 의병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영동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토벌대가 합류해야 겨우 안성지역에 들어올 수 있는 정도였다. 일본경찰이 조직해놓은 자위단은 형식적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었고, 의병들도 이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위단들이 일본경찰에게 의병들에 관한 사항을 모두 보고하였다고 하였으나 극히 형식적이었을 것이다.

 

3. 무주군 안성면 주변 산사를 활동 근거지로 삼았다.

안성 일안면 구천동 산사와 이안면 사탄리 산사(두 절은 인가에서 2(800m)이상 떨어진 깊은 산골에 있다.)에 들러 폭도들이 다녀간 상황을 물었으나 전에는 가끔씩 이곳에 나타나 머무러고 간 적이 있으나 최근에는 나타난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안성 일안면은 현재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에서 유명한 절은 백련사이다. 이안면은 현재 무주군 안성면 소재지로서 칠연계곡이 길게 펼쳐져 있으며 계곡의 막다른 곳에 원통사가 있다. 두 절은 덕유산 향적봉을 중심으로 서로 반대편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다. 다만 지형을 알지 못하는 일본경찰에게는 매우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덕유산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월성계곡에 문태서장군의 의병부대가 본거지를 마련하여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북도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발한 의병전쟁을 벌였다. 산사에 들러서 의병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였지만 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리 없었을 것이며, 그 까닭에 이렇게 기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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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월성계곡은 그 당시에 행정구역상 안의군으로 분류된지역이니 안의지방으로 도망갔다고 기록한 일본놈들의 기록과 월성계곡으로 이동했다고 해석한 필자의 판단은 모두 맞다고 하겠습니다 2019-06-01
곡우
3.1운동기념사업회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을하고 계시네요. 진작에 공공영역에서 했어야하는 일인데 이제와서 결국은 민간단체에서 하게되다니. 어쨌든 대단한 일을 하시는데 대해 박수를보냅니다 2019-06-01
감동
의병들의 활동은 말보다는 행동이기에 감동을 줍니다.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인간들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합니다. 2019-05-27
함양사람
덕유산 호랑이 문태서장군의 일대기를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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