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평생학습 교육 수강생 모집
대한미용사회 함양군지부 봄 야유회
금연 글짓기 공모전
최종편집
2019-08-23 오전 9:09:00
기사
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회사소개 | 후원하기 | 사업영역 | 시민제보 | 취재요청 | 명예기자신청 | 광고문의 | 콘텐츠
뉴스
함양뉴스
읍면동뉴스
정치의원
사회단체
체육축제
교육문화
기업경제
농민뉴스
미담사례
고시 및 공고
경남뉴스
전국뉴스
향우뉴스
오피니언
칼럼/사설
여론광장
독자코너
자유게시판
인사이드
부동산
인물동정
맛집/멋집
관광여행
기자탐방
2019-06-10 오전 9:12:06 입력 뉴스 > 함양뉴스

문태서 장군, 덕유산 의병 통합 지휘!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기획연재 ⑤



▲ 문태서 장군 부대의 활동무대인 덕유산

 

4회 연재에서 312일 서하면 신기마을에서 50여명 규모의 의병부대들이 군자금과 식량을 수집하였고, 313일에는 서하면 거기마을에서 50여명 규모의 의병부대들이 역시 같은 활동을 하였으며, 314일에는 영각사부근에서 110여명의 의병부대들이 일본군 함양수비대들과 전투를 벌였다.

 

한편 덕유산 부근의 다른 곳에서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다음은 2개의 보고서는 1908320일과 321일 보고된 일본경찰의 공식문건이며 폭도에 관한 편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보고서1>

발신자 : 남부수비관구사령관 츠네요시 타다미치

수신자 : 경무국장(경찰총장) 마츠이 시게루

-이쿠다메 대좌(대령) 보고 320일 대전으로부터

320일 도착 영동수비대장 나카오 중위 보고내용 요약 319일 영동으로부터 무주주재 다나카 순사의 통보에 의하면 317일 밤 5~60명의 폭도가 무주 남방 약 3리반의 상곡면 상조에 침입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있는 해당지역 면장을 구타하고 천백관의 벌금을 명하였다. 폭도의 수괴는 문태수로 318일 횡천면(안성 이남지구) 방향으로 향했다 한다. 이에 대하여 하사 이하 7명을 변장하여 무주에 파견하였다. .

 

<보고서2>

발신자 : 남부수비관구사령관 츠네요시 타다미치

수신자 : 경무국장(경찰총장) 마츠이 시게루

-카타노 소좌(소령) 보고 327일 조치원으로부터

진안 용담 방향으로 출전하였던 토리이 중위 이하 병력은 27일 전부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 보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직접 살펴본 결과 진안군, 용담군, 무주군에는 폭도가 발생한 흔적이 없다.

3월 중순경 김동신 이하 40명은 문태서 이하 60, 유모 이하 70, 신모 이하 40명으로 된 폭도의 제집단과 무주 남방 약 3리의 안성 부근을 배회하여던 바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 모두 경상도로 도주한 것 같다.

21일 용담에서 폭도 2명과 조우하여 이들을 쏘아죽였다.

23일 개화동(용담 서방 약 오리)에서 폭도 1명을 쏘아죽였다. .

 

<보고서2>에서 언급된 유모 의병부대는 유종환 의병대장의 부대이며, 신모 의병부대는 신탁광 의병대장의 부대로서 두 부대 모두 덕유산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 중위가 지휘하는 소대병력(60명 정도)이 덕유산을 접한 전라북도 동북부 진안, 용담, 무주군을 조사하였으나 의병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의병부대들은 대부분 북덕유산의 동쪽사면인 경상남도 거창군과 안의군(현 함양군 안의면)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다고 하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의병들이 아니라 일본군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순수 민간인들이었으며, 1908년부터 일본군들은 의병소탕명분으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321일 폭도 2, 323일 폭도 1명을 죽였다는 말은 자기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던 민간인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폭도라는 이름으로 보고하였다.

 

3월 중의 각종 보고서를 중심으로 한 일본 측 기록에는 여러 가지 허점이 있으며, 중요한 내용을 추출할 수가 있다.

 

첫째, 일본군들은 덕유산 주변의 행정구역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덕유산(향적봉)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거창군 고제면, 서쪽에는 무주군 안성면, 남쪽에는 경남 거창군 북상면, 북쪽에는 무주군 횡천면(현 설천면)과 상곡면(현 적상면)이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군이 24시간 야간행군을 하여 영각사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은 믿을 수가 없다.

 

둘째, 덕유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의병들의 조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덕유산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고 있던 의병부대는 문태서, 박춘실, 신탁광, 전성범, 유종환, 김동신 등이 이끌고 있었다. 3월 중순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군수물자 모집 활동은 덕유산 부근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하지만 일본군들은 이러한 활동을 문태서 의병부대의 단일 행동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셋째, 문태서장군은 의병부대를 소규모로 나누어 덕유산 각 지역에 분산배치하였으며, 대규모 전투가 이루어지면 이들을 결합시켜 통합하여 지휘하였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 부근에서 치루어진 전투에 동원된 의병 수는 일본측 기록에 따르면 110명이었다. 거기마을에 출병한 부대와 신기마을에 출병한 부대가 결합하여 치루어 낸 전투이다.

 

-글: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의견보기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의견쓰기
작 성 자 비밀번호
스팸방지  
※ 빨간 상자 안에 있는 문자(영문 대소문자 구분)를 입력하세요!
의견쓰기
내용은 200자 이내로 적어야합니다.
기사와 무관한 글은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검찰, 이상인 안의농협..
산삼축제 성공기원 산양..
함양군농업인단체, 'NO..
제40회 함양중학교 총..
함양농식품, 미국LA 70..
성악가 조수미 전속디..
함양군의회 의원정기간담회
제74주년 광복절 경축 ..
에덴영농조합법인, 면..
서춘수 군수, 베트남에..


방문자수
  전체 : 155,722,908
  어제 : 66,466
  오늘 : 14,147
함양인터넷뉴스 | 경남 함양군 함양읍 함양초등길 57| 제보광고문의 055)964-5005 | 팩스 055)964-5004
회사소개 | 후원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인터넷신문 등록일 2009.9.14 | 발행연월일: 2009.9.14ㅣ등록번호 경남 아00084호 | 발행인:박정주 | 편집인:박영일ㅣ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주
Copyright by hyinews.com All rights reserved. E-mail: hy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