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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9 오후 6:21:23 입력 뉴스 > 함양뉴스

총을 잡으면 의병, 낫을 쥐면 농사꾼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기획연재 ⑫



▲ 일제강점기 시기 모내기 장면(사진=과천문화원)

 

19096월에서 10월까지는 문태서장군 의병부대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군경이나 대한제국 관리들이 생산해낸 폭도(의병) 관련 문건 수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문태서장군과 관련된 문건은 4건에 불과하다. 내용도 직접적인 전투나 이동상황 등이 아니라 단순한 수색 또는 정보수집 수준의 문건 뿐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18942월에 시작된 동학농민혁명도 농사철 기간인 5월에서 9월까지는 전투행위를 벌이지 않았다. 해당지역 출신들로 구성된 독립된 의병부대들은 총을 잡으면 의병이 되고, 농기구를 잡으면 지역농민이 되는 부대운영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농사철에는 농사를 지어야만 1년을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전투보다는 농사일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러한 부대운영원칙이 생겨난 것이다. 해당 기간 중에는 소규모의 의병활동이 있었을 뿐이며 조직관리 및 의병부대원 확보에 더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6월 중에는 문태서장군이 지휘하는 의병부대가 특별한 전투를 벌이지 않았으며, 다만 의병부대 지휘부는 근거지에서 최소한의 활동을 하고 있었음이 감지된다.

 

6월 중순 전라북도 관찰사 이두황은 내무대신 박제순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615일 금산경찰서장

관내 용담군내 폭도상황정찰로 68일 소관은 순사 6명을 인솔하고 출장하여 지난 14일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 상황은 다음과 같다.

금산군 남이면(현 충남 금산군 남이면)과 용담군 일서면 이서면 동일면(동일면은 일동면의 오기로 봄, 현 전북 진안군 안천면, 동향면 일대)은 지금 아직 4~5명에서 10명 가량의 화적떼 비슷한 폭도가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하였으나, 동장과 피해자 중에는 후환을 두렵게 여겨 신고하지 않는자가 많이 있으므로 앞으로는 반드시 신고해야 함을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수괴 문태수는 지난달 8일 이후 잠시 용담군 일동면 방면에 잠복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동군에 잠복한 흔적이 없고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충청북도 옥천군 방면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부하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또 동일면(일동면의 오기)에 총기를 숨겨놓고 있는 자가 있는 듯한 소문이 있어서 엄밀한 수색을 진행하였으나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상의 상황으로 적의 근거는 판명되지 않았다.

 

금산경찰서 관할 금산군 남이면과 용담군 일서면, 이서면 동일면 등에서 소규모의 의병부대가 의병부대 활동 자금 및 식량확보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동장과 지역주민들이 이러한 활동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이 말은 여전히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경은 지역주민들에게 의병활동을 신고할 것과 의병활동에 가담하지 말 것을 주역주민들에게 경고한 것이다. 일본군경은 문태서장군의 근거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옥천군으로 이동하여 의병부대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사실 농번기에는 의병들을 소집할 수도, 소집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 시기에 마을단위나, 지역단위의 의병편제를 꾸려나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부대운영이다. 농사일에 전념하는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농한기에 의병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선무활동을 강화하고 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본군경들은 농민이자 의병들인 지역주민들이 숨겨놓은 무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노련한 의병부대 운영이다.

 

속리산으로 근거지를 옮겼다는 일본군경의 보고서는 사실이었다. 보은군 관내 여러 지역에서 농번기에 적합한 의병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친일분자들에 대한 응징과 재산강탈 등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9월 초 충청북도경찰부장 반도오 에이지로(坂東榮次郎)가 내무경무국장 마쓰이 시게루(松井茂)에게 보내는 보고서에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충청북도경찰서 관내 영동경찰서 관할 지역에 있어서 폭도상황은 지난번에 보고한 바과 같이 근래 출몰이 빈번하여 민심이 약간 불안한 상태에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수색과 검거 그리고 민심위안의 목적으로 해당 경찰서에서는 91일부터 2개조의 정찰대를 보내어 활동한 바 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중략)

2. 93일 오후 4시경 한 부대는 수괴 문태서 이하 6명이 상주군으로부터 청주군 미원 가도를 향하여 보은군 남악리(현 충북 보은군 산외면 남악길)를 통과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추적하였던 바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정보를 듣고 3개 방면으로 분산하여 추적하였으나 해가 진 까닭에 행적을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었다. 당일 다른 부대는 익일 보은군 탄부면장 살해 폭도의 수색 등을 위하여 부근 부락과 주변을 수색하였지만 성과가 없었으나 폭도무리들은 전에 나타났던 수괴 문태수인 것 같다.

3. 95일은 군수 헌병대 등과 상의하여 보은군 각 면장 등을 주재소에 소집하여 주민들의 폭도 피해 예방, 경계 방법 등을 설명하고 주민들에게 치안상황이 안정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참석자들은 약간 안심이 되는 모양으로 면장 살해사건 이후 피난하였던 자들도 우리의 정찰 등으로 인하여 폭도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하였다.

 

이에 영동서장으로부터의 보고가 있었으므로 이를 받아 다시 보고함.

덧붙임, 영동경찰서에서는 충북경찰서로부터 출장한 나카지마(中島) 경부 일행과 연락하여 계속 다른 지역을 엄중 정찰 중에 있음.

 

문태서 장군이 왜 의병부대의 본거지를 덕유산에서 속리산으로 옮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19085월 이후 문태서장군과 관련된 일본군경과 대한제국 관리들이 생산한 보고서에 나타난 지명이 주로 충청북도 속리산 주변이 많다.

 

문태서장군 의병부대는 보은군 지역에서 매국행위를 일삼던 탄부면장을 비롯한 일진회 회원들을 공개적으로 살해하여 지역주민들에게 매국행위에 대한 댓가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일진회를 비롯한 반민족행위자들이 공포에 떨었으며 피난을 했던 모양이다. 의병부대들에 의한 치안부재를 염려한 일본군경은 관내 지역유지들을 모아놓고 각 종 교육, 보고, 설명 등을 통해 의병활동에 지역주민들이 가담하지 못하도록 주민통제를 강화하였다. 기록으로는 치안이 안정되었다고 적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924일자로 전라북도 관찰사 이두황이 내무대신 박제순에게 보내는 보고서에는 의병들이 농사일을 위해 마을로 돌아와 있음이 잘 나타나 있다.

 

924일 남원경찰서장

(중략)

6. 916일 남원경찰서 일본인 및 한인 순사 3명은 운봉장수주재소 일본인 및 한인 수사 4명과 함께 장수군 지방에 폭도조사를 위하여 출장 중 일찍이 장수군 계북면 문성동 덕유산에서 수비대 및 경찰관들과 교전을 벌여서 격파된 후 타방면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던 수비병에게 체포당한 잔여 폭도-수괴 박충실과 문태수의 부하가 현재 구분절(음력 715일 우란분절 일본어로 규우봉)전에 상당하므로 잠시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행은 즉시 앞에서 언급한 마을에 이러러 해당 주민들을 수배하고 수사한 결과 921일 다음과 같이 11명을 체포하여 구금하였다. 따라서 현재 남원경찰서에서 엄중 취조중에 있다.

 

남원경찰서 운봉장수주재소에서는 지역 내 의병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지역에 출장을 나갔다. 10회와 11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수군 계북면 문성마을 양악동 계곡에서 벌어진 박춘실의병부대와 벌인 전투에서 일본군은 박춘실을 체포하고 부대를 패퇴시켰다. 이때 후퇴했던 의병들이 마을로 돌아와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정보들이 일본군경들에게 들어갔다.

 

우리에게는 추석이 큰 명절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우란분절(음력 715)이 큰 명절이다. 이 명절 이름이 구분절(일본어로 규봉)이다. 이 추석을 맞이하여 많은 의병들이 집으로 돌아와 있었을 것이며, 일본군경은 수색활동의 기준을 우란분절을 중심으로 하여 기록했다. 해당 지역에 깔아놓은 정보망을 이용해 의병에 가담했던 경력이 있는 지역주민을 체포하여 구금하고 취조하였다. 기록에서 잠시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부분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미 6월초에 문태서장군 의병부대 본거지가 속리산으로 옮겼으며, 농번기에는 의병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58일 해당지역 독립의병부대 의병장인 박춘실이 체포된 상황에서 별도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의병부대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모순점이 있으며, 해당지역은 산간지역이기 때문에 5월 초순에 농사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5월 중에 대부분의 의병들이 귀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6월에서 10월 사이에 문태서장군의 행적과 관련된 보고문서가 4건 밖에 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그 까닭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이 5월에서 9월 사이에 전투행위를 벌이지 않은 것에서 찾았다. 농민이 혁명군이요, 농민이 의병인 해당지역에서는 전투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1년 농사인 것이다. 총잡으면 의병! 낫잡으면 지역농민!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동에 문태서장군 의병부대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의병부대 본거지를 덕유산에서 속리산으로 옮긴 것이다. 그 까닭을 다음 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태서장군은 그동안 준비해왔던 전투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더 큰 의병전쟁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주 기자(hy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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