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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5 오후 1:10:04 입력 뉴스 > 함양뉴스

문태서의병부대의 통쾌한 이원역 습격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기획연재 ⑬



▲ 충북 옥천군에 위치한 이원역

 

일본은 190991일부터 1010일까지 약 40일 동안 '남한 폭도(暴徒) 대토벌 작전'을 실시한다.

 

이 작전은 의병활동이 가장 격렬한 지역인 전남과 전북 일부 지역에 2천명의 정규군을 동원해 3단계에 걸친 작전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항일 의병들을 진압했다.

 

1단계 작전은 전북 남원~고흥~광주~영광 등으로 이어지는 외곽, 2단계는 고흥~ 광주~영광 근방을 기점으로 남서해안지대, 3단계는 전라남도 서쪽 지방으로 탈출하는 항일 의병들을 섬멸하기 위해 무인도 지역까지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초토화 작전'이었다.

 

일본제국 군대는 압도적인 화력으로의 잔학한 방법을 동원하여, 의병은 물론 양민까지무참히 살육, 방화, 약탈 등을 일삼았다.190910월 말은 이러한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만족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문태서장군 의병부대는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일본군경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 사건이 1029일 자정에 벌어진 경부선 이원역 습격 및 완전 소각이었다.

 

이 전투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일본과 한국측 기록은 극명하게 다르다.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에서는 우선 일본기록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기 때문에 일본군경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

1029일 자정에 펼쳐진 이원역습격 사건은 대한민국을 일본에 강제로 병합시키려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일본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들의 기세가 꺾였다고 판단했던 일본은 이원역습격을 당한 후 또다시 토벌계획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군경이 가장 많은 보고서를 만들어낸 사건이며 단일 보고서 중 문서량이 가장 많은 사건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군경은 덕유산 및 속리산 주변의 폭도토벌계획을 별도로 수립하게 된다.

 

190911월 초에 영동경찰서장 경부 오토마사 히로시키는 통감부 내부 경무국장 마쓰이 시게루에게 이원역 폭도내습에 관하여 그간 올린 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양이 워낙 많은 보고서이기 때문에 이번 연재물에서는 보고서 내용을 읽기 쉽게 번역한 내용만 올리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 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덧붙일 점은 보고서 내용이 일본식한자여서 해석에 어려움이 많은 곳과, 내용이 서로 상이한 곳은 번역을 하고 ( )안에 원문을 추가하였으니 식견이 있으신 분의 도움을 부탁드린다.

 

앞서 보고한 이원역 폭도내습에 관한 건 상보는 다음과 같다.

 

폭도내습 및 도주에 관한 조사와 그 상황

 

1. 폭도 16명이 본월(10) 27일 영동군 양남면 반포동(현 영동군 학산면 마을불명) 성참봉 집에 쳐들어와서 성참봉 둘째아들(24)을 납치하였다는 신고를 받고 다음날인 28일 영동경찰서 일본인순사 3명에게 한인순사 3명을 인솔하게 하여 즉시 출동시켰다. 그런데 폭도는 이미 도주한 후였으나 폭도는 오늘(28) 밤 다시 올테니까 그때까지 돈을 만들어 둘 것을 집주인에게 명령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다음날인 28일 납치했던 아들을 풀어주고 그 대신 그 집안의 하인을 다시 납치하였으므로 10(당시 조선은행권은 금태환권으로 1원의 금가치는 순금 2(750mg)이었다. 2019. 8. 4 환산 약 45000원 따라서 현 450,000)을 주고 납치되었던 사람을 되찾아왔다. 집주인의 진술을 듣고 순사는 이 사실을 조사하면서 당일(28) , 같은 장소에 잠복하면서 폭도들의 재침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오지 아니하였기에 다음날 29일 양내면(당시는 옥천군, 현 영동군 양산면 북부지역)을 조사하고 시장에서 1박을 하고 있던 중 적은 불탄리(현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추청)에 이르러 한 마을을 포위하고 금품을 강요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즉시 해당지역으로 가 추적을 하였던 바 폭도들은 29일 오후 7시경 어디론가 도주한 후였다. 부근을 조사하던 중 양내면 신두리(현 영동군 양산면 수두리 추정)에서, 폭도는 29일 밤 이원역(현 충북 옥천군 이원면)을 습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불탄리(현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추청)로 긴급출동하였지만 적들은 같은 날(29) 오전 3시경 동면 양남리(현 충북 영동군 학산면)를 통과하여 금산군 방면으로 이동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방면을 조사하던 중 무주헌병과 수비병들이 정찰을 하고 있어서 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금산방면은 헌병과 수비병에게 넘기고 일행은 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반대방향을 향하여 조사를 계속 진행하면서 같은 날(29) 오후 10시 별다른 소득없이 영동경찰서로 돌아왔다.

 

2. 이로부터 29일 오후 11시 지나 옥천순사주재소는 이원역 선로공부 모씨로부터 지금 이원역에 백여명의 폭도가 내습하여 지금 역사에 불을 질러 역사가 타고 있다는 긴급한 소식을 듣고 주재소 우치다(內田) 순사는 옥천읍내인(30정 떨어진 곳 약3.3Km) 김중 순사에게 긴급하게 연락함과 동시에 해당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에 대해여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 후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였다. 동서 순사들이 이원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30일 오전 130분으로 동서 순사들이 도착함과 동시에 영동으로부터 11명의 수비병이 도착하였다. 그리고 동 순사는 현장의 상황을 조사한 바 쳐들어온 폭도는 16명으로 29일 오후 1010분경 돌연 이원역 앞에 있는 작은 언덕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면서 소총 7~8발을 발사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역사로 돌진해왔다. 역원 모두 도망함을 확인하고 역사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자행하던 중 오후 11시경 심천역(현 충북 영동군 심천면) 방면으로부터 마지막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이남(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서부지역)방면으로 도주하였다.

 

3. 29일 오후 12시 영동경찰서는 영동서장으로부터 지금 이원역에 폭도가 쳐들어와서 정차장에 불을 지르고 있다는 등의 급보를 받고 즉시 감독순사 이하 순사 4명이 정차장으로 달려와 이원역에 비치된 소화장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해당직원은 이미 역앞에 거주하는 무주수비병의 기맥교통병 11명에게 대여하고 우리들에게 줄 장비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나 현장을 향하여 긴급하게 출동하여 30일 오전 5시에 도착하였으나 폭도들은 이미 도주한 뒤였다. 옥천주재소의 우치다(內田)순사와 병사 7명은 이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서로 의논하여 합동으로 부근을 정찰하였으나 적은 이남 방면으로 도주한 모양이다. 별 소득없이 뒤처리를 우치다(內田) 순사에게 명하고 111일 돌아왔다.

 

당시 피해 규모

1. 1029일 오후 1010분 돌연 이원역 앞쪽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부터 16명의 폭도가 이원역에 쳐들어와 언덕 정상에서부터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며 역사로 진입하였다. 당시 이원역에 함께 있던 역장 오카다 ?기치(岡田)와 보조원, 작업일꾼 등 8명은 대피하려고 하였지만 폭도는 이미 역 앞쪽 언덕에서 일제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대피를 할 수 없어 변소 혹은 목욕탕에 숨어 있었다. 이 때 폭도는 재빨리 역사에 들어와 실내외 각종 시설을 파괴하고 마지막에는 방화를 하였다고 한다. 목욕탕에 숨어 있던 역장 이하 오명은 화염에 둘러싸일 위험에 다다르자 목욕탕을 탈출하여 안전하게 대피하였다.

2. 야마구치 이타로오(山口伊太郎), 아베 킨고로오(安部金五郎) 2명은 사격을 받았을 때 역사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여는 순간 야마구치는 유리파편으로 오른쪽다리 피부에 약 폭 오분 길이 팔촌 깊이 3분의 부당을 입었지만 아베와 같이 심천주재소로 말을 타고 대피하였다. 기타 해당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이나 한국인의 피해는 없다.

3. 앞에서 언급한 이원역으로 들어온 열차는 역원과 그 가족 및 거류민 20명을 승차시켜 심천역을 향하여 되돌아가게 하고 이원역으로부터 영동역에 전화로써 보고하였다.

4. 대전역은 옥천역의 보고에 의하여 임시열차를 만들어 병원 약간명을 승차시켜 피해 현장에 30일 오전 2시경 도착하였다.

 

피해물건 및 가격

 

1. 역사 1245합 전소 손해액 2천원

2. 역청사 비품 다부렛트(등사기) 외 일체 기구 소실 가격 12백원

3. 역장 관길쇠(官吉鎖) 4본 장자(障子) 1본 파괴 가격 약 10

4. 수제포(手提鞄) 1, 백모포(白毛布) 1(), 괘궤(机掛) 1, 관급외투(官給外套) 1, 창측회중시계(鋹側懷中時計)1, 니켈회중시계(닉켙懷中時計) 1, 관급조역복상의(官給助役服上着) 1, 역부복 1, 역부외투 2, 현금 약간 합계 85

 

폭도 심수괴(핵심수괴?)로 인정되는 자 및 대원수 년령 복장 및 무기

 

1. 폭도수는 16명으로 연령 복장 및 앞에서 언급한 행동을 종전에 피등의 한 행동을 예로 비교하여 이번 것을 고찰하건대 이 폭도는 항상 관내 각지에 배회한 수괴 문태서 및 그 부하 15명이라고 인정된다. 연령은 대개 30 전후의 성인들로 복장은 흑생 혹은 백색의 한복을 입었으며, 다 관과 망건을 쓰지 않고 헝겊조각으로 머리를 둘러 묶었다고 하였다. 총기는 양총과 화승총을 섞어 13(30년식 무라다총 케이스 수 1개 모젤테이스, 장탄의 것 1개 연탄 2개로 현장에 남겨져 있었으므로 이를 추정하였다.(원문 三十年式 村田銃 케이스數 一個 -젤테이스, 裝彈의 것 一個 鉛彈 二個現場遺留하여 있었으므로 推定하였다)2 권총 1개 칼 1점을 휴대하였다 한다.

 

 

폭도내습의 목적

1. 폭도내습의 목적은 주로 재화약탈에 있어서, 배일사상과 같은 목적은 전혀 없었으며 민간인 살상이 목적인 흔적은 전혀 없었다.(排日思想함은 되는 目的하고 그리고 哈京賓 兇變(합경빈 흉변?)關聯한 것과 痕跡全然 此認定치 않는다.) 그 이유는 만약 폭도가 확실한 배일사상에 의하여 일본인 살해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면 이번 일을 거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살해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폭도의 손에 의한 단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단지 폭도는 현금 40원 가량과 잡품 몇 점을 약탈한 것으로만 그치고 또 승객의 가장 근소하고 많아도 6,7명을 초과치 않으므로서(원문 乘客의 가장 僅少하고 많아도 , 七名超過치 않으므로써)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마지막 열차가 진입하여 들어오는 데 대하여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고 황급히 도주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이를 인정한다.

 

폭도의 수색 속행상황

1. 경찰서 순사 6명과 옥천주재소 순사 4명을 각 개별로 정탐을 위하여 풀고(警察署 巡査 六名沃川駐在所 巡査 四名各 別個偵者하여) 엄밀히 수색중이나 아직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도중에 영동군 양내 방면에 폭도가 잠복하고 있는 정황이 있다는 정보를 받고 순사감도 이하 오명을 급파하였다.

 

피해자 등 보호 상황

1. 본직은 경찰부에 열린 서장회의를 마치고 30일 오후 경찰서로 돌아와 당일 이원에 출장하여 역원 및 주재소 거류민 등을 세세히 위로하고 당일 밤 현지에서 1박을 하고 오늘 경부 신상호 이하 3명을 현지에 머무르게 하고 이들을 보호하게 하며, 심천과 옥천방면으로 피난중인 부녀자 등 모든 민간인들은 오늘자로 집으로 돌아갔으며, 치안이 원래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인정하엿다. 기차 운전에 대하여는 하등의 피해가 없다.

 

이 보고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이미 밝혔다. 한국측 기록과 매우 다른 곳도 많고 보고서 상에서도 서로 맞지 않는 곳이 많다. 이러한 점은 이번 연재물에서 다루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도 이미 밝혔다. 다음 연재물에서는 좀더 세밀한 분석과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글: 3.1운동 함양군기념사업회

 

 

 

함양인터넷뉴스(hy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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