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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일 칼럼] 함양양파의 선지자 문천세 선생을 기리며

기사입력 2021-11-2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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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시대로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은 기능성 식품을 찾게 되고 그중 대세를 이루는 것은 양파라고 할 수 있다. 양파는 기원전 4000여년전 고대 이집트에서 식용으로 사용했다고 하며, 피라미드 건설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마늘과 함께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되고 강장적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양파는 당질과 비타민B1, B2, C 그리고 양파 특유의 매운맛인 유화알린 성분으로 피로회복과 변비, 다이어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몸에 이로운 점이 많아 대단히 인기가 높을 뿐 만 아니라 볶음, 장아찌, 발효식품 등으로 요긴하게 사용돼 현대인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되돌아보면 양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00년대 초 일본에서 유입됐다. 우리 함양에는 1945년 조국 광복과 더불어 귀국한 문천세 선생이 미맥위주의 반만년 역사를 가진 농업구조에서 탈피키 위해 가져온 종자로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서 채종포를 만들어 이웃에 재배토록 권유하고 보급한 것이 맨 처음이다.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경제는 침체되고 빈곤의 악순환으로 오로지 식량해결만이 능사였던 때, 벼나 보리농사보다 양파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수동지역에서만 양파농사가 부분적으로 이뤄졌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과 협동의 새마을운동으로 의식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농업에는 신품종 확대보급으로 식량부족이 해결됨으로서 보리고개도 사라지고 차츰차츰 새로운 작목에 눈을 돌리게 됐다. 이에 부응하여 여타 작목보다 소득이 높은 양파재배도 수동을 시작으로 유림, 휴천, 함양, 안의, 지곡 등지로 점차 확대보급되었다.

 

2021년도 함양군에 따르면 667농가에서 796ha 76.673톤이 생산되면서 390억원이상의 농가소득이 달성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함양은 해발이 높고 일교차가 커 함양토양에서 생산되는 양파는 단단하고 맛과 저장성이 높을뿐더러 게르마늄 토양에서 자라 건강식품으로 알려져있다. 요즈음 함양의 건강원과 택배회사가 가장 바쁘다고 하는데 손수 지은 양파를 즙이나 양파 그대로 객지의 자녀들에게 보내려는 부모님들의 사랑과 전국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하기 때문이란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미맥 위주의 농업구조에서 소득 1위 우위작목으로 자리를 지켜온 벼농사(소득 410억원)가 사과에게 내주고, 3위인 양파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형편이다. 과수도 아닌 채소가 소득 우위 작물로 올라설 줄이야 생각도 못할 일이다. 게다가 함양에서 양파농사를 혼자서 1ha(3000)이상 재배하는 농가가 273호에 591ha면적에 300억원의 소득을 달성하고 있고, 농가당 11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니 격세지감이다. 물론 규모가 대형화된 것은 인력이 부족하고 인건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영세농은 자연 도태되고 기계화 영농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추세된다.

 

이처럼 부농을 이루는 양파농사에는 2000년부터 함양군의 전폭적인 지원(2021년 양파종자대, 톱밥대, 농기계, 토양소독제 생산성향상자재 등 10여억원)과 관계 공무원의 헌신적인 지도와 안정적 판로보장을 위한 농협의 계약수매제도와 묘판에서 수확까지 무려 10개월동안 흘린 농업인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최근 산삼육성에 지원하는 사업비에 비하면 턱없이 적어 양파농가의 사기진작에 심한 우려가 된다.

 

양파를 우리 군에 처음 보급한 문천세 선생의 고마운 뜻을 길이 보전하길 기대하면서...

 

박영일

현) 함양인터넷뉴스 회장

전) 함양군 기획감사실장

 

 

 

 

 

 

 

 

 

 

 

이종탁 기자 (hy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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